다음날 정오에 사보는 또 낚시놀이를 하러 왔다. 자리에 앉아 바늘을 던졌고, 던지자마자 바로 낚싯대가 흔들렸다. 사보는 밑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손목에 낚싯줄을 잡고 있는 인어가 있었다. 사보는 자기가 어제 봤던 건 적어도 환영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인어가 입을 열었다.

"풀어줘."

"어제 풀어줬잖아."

"그거 말고 이거."

인어는 잘 보란듯 팔을 내밀었고 투명한 낚싯줄이 손목시계처럼 들러붙어있었다. 사보는 그제서야 알아채고 그의 손목에 붙은 줄을 떼어내려 인어의 팔을 잡았다. 그때 그 소년은 깜짝 놀라며 팔을 약간 뺐다. 사보는 손을 놓친채로 멍하니 있었다.

"뜨겁잖아!"

인어는 얼굴이 조금 일그러진 채로 말했다. 그리고 사보의 손가락 모양대로 붉어진 팔목을 보였다. 사보는 다시한번 당황했다. 내 손에서 불이 나올리는 없고, 인어라서 그런가?

"아, 아니 화 낸건 아니야. 빨리 풀어줘. 참을게."

그는 뜨거운 것보다 팔목의 그것이 더 신경쓰이는 것같았다. 사보는 이번엔 그의 몸에 손 대지 않고 칼만 사용해서 완벽하게 줄을 제거해냈다. 인어는 그제서야 고, 고마워라고 말 하곤 재빨리 사라졌다. 사보는 속으로 또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이튿날 인어는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사보는 멀찍이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고 안녕!이라 외쳤고 인어는 잠깐 멈춰 고개를 내밀고 사보를 보았다.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려 사보는 다시금 크게 인사를 했다. 인어는 그제서야 알아챈 것같았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몇 초 지나지않아 인어는 돌고래처럼 사보의 눈높이까지 뛰어올라 안녕!하고 인사했다. 비늘들이 빛을 반사해 여러 빛깔로 부숴졌다.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제 다친 건 괜찮아졌어?"

인어는 괜찮다하고 제 팔을 들어보였다. 인간과 별 다를 것없어보이는 피부였다.

"이름이 뭐야?"

사보는 인어에게 지극히 평범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인어는 누가 봐도 '나 지금 기뻐요.'라고 알아차릴 정도로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스."

에이스는 그에게 다시 질문했고 사보도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보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건 돌아오지 않았고, 오늘 처음으로 대화를 해서 기쁘다고 했다. 사보는 그런 에이스가 꽤나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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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첫 만남은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적잖은 문화충격을 겪었다. 여느때처럼 바다낚시를 하러 나온 사보는 하릴없이 낚싯대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매일같이 바닷가로 나오지만 그의 양동이는 항상 비어있었다. 미끼를 꽂지 않은 낚싯줄이 파도에 무게감없이 이리저리 떠다녔다. 사보는 집에 있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해가 거의 넘어가자 사보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집에 들어가려고 했고, 그때 잠깐이지만 낚싯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럴리가 없지 하고 거두려는데 무언가 힘 있는 것이 낚싯줄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보는 바위에 걸렸으려나 하고 줄을 끊을 요량으로 세게 잡아당겼고 거기엔 사람이 매달려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만 사람이었다.


이 마을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반인반어, 인어라고 부르는 그 생물체들이 예전에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았다고 하지만 어느샌가 매우 흉포해져 인간에게 해를 입히고 바다로 돌아갔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어린아이들만 좋아라하는 동화일 뿐이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보였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낭패라는 듯이 서로 갈길을 가려고 했지만 역시 낚싯줄이 문제였다. 물 안의 소년(으로 보이는)은 팔에 낚싯줄이 감겨있었다.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아파서 소리를 내자 물 밖의 소년은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려는 행동을 멈추고는 조심스레 그 검은머리(로 보이는)를 불렀다. 다행히 말이 통하기는 해서 그는 순순히 다가왔고 사보는 줄을 끊어내었다. 그게 첫만남이었다. 줄이 끊어지자마자 인어는 사보와 잠깐 눈인사를 한 뒤 바닷속으로 달아났다. 사보는 착한 인어도 있네. 하고 중얼거리고는 생선을 사러 가게로 향했다.


지나친 호기심은 화를 재촉한다는 말은 당연히 무시한지 오래였다. 에이스는 콧등에 있는 주근깨로도 듣지 않았다. 뭍에서부터 나오는 불빛과 음악소리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는 홀리듯 그것들을 보러 몰래 바닷가로 향했다. 그리고 한 인간을 보았다. 낚싯바늘이 위험하다는 말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소년은 물고기들을 속이기위한 미끼가 없어보였다. 저거 바보 아니야? 하고 펭 코웃음을 친 에이스는 그 소년의 시야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쪽으로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갔다. 노을에 비친 금색 머리칼이 에이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간도 나름 괜찮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며 에이스는 그때부터 인간소년을 보러 왔다. 들키면 매우 나쁜 상황(잡혀서 팔려간다거나)이 일어날 것이 뻔하기에 말도 걸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에이스는 물 속에서 보글거리며 인간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사는 곳은? 나이는 몇이야? 물고기 안 잡아가? 혼자 재잘대다가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리는데에 지쳐서 그래, 당연히 들릴리가 없지.하고 시무룩해져 돌아가는 건 일상이 되었다. 그 날도 항상 그래왔듯이 인간소년을 보러 바닷가로 온 참이었다. 에이스는 과감하게 그 소년이 보이는 바로 밑에서 질문을 하다가 낚싯줄에 팔이 감겨버렸다. 에이스는 살면서 경험해왔던 당황 중에서 제일 큰 당황을 느꼈다. 이미 팔려나가는 자신이 눈 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미안해 아버지 나, 말을 듣지 않아서... 먼저...이렇게... 하지만 줄은 너무 아팠고 에이스는 끌어올려지는 힘에 굴복해서 그만 수면위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눈이 마주치고 에이스의 뇌리에는 망했다 이 세글자가 박혔다. 둘은 의미없는 줄다리기를 계속 했고 에이스는 아픔에 신음을 흘렸다. 그때 당기는 힘이 느슨해졌고 그는 인간소년이 여기로 와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에이스는 이미 반 포기상태여서 기왕 잡아갈거 형태보존하기 위해 가려나보다 하고 얌전히 낚싯줄이 감긴 팔을 내밀었지만 그 다음엔 해방감만 느껴졌다. 인간소년은 줄을 끊어줬다. 에이스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완전히 벗겨낸 것은 아니라 그의 팔엔 여전히 낚싯줄이 팔찌처럼 감겨있었다.


사보는 집에 와서 책을 뒤적거렸다. 어딜봐도 인어는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로만 묘사되어있었다. 그것도 성인여성의 상반신을 한 인어만. 사보는 제가 오늘 본 게 과연 실재하는 존재가 맞는가 하고 의구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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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시간은 상대적인 거라서..."

소년은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끼고 제 앞에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는 말을 하나도 주워담지 않았다. 됐어. 어쨌든 늦은거잖아? 라는 말 한마디에 앞에서 한껏 변명을 늘어놓던 입을 막아버렸다. 너, 나한테 빚졌어. 소년은 그대로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잠영을 하는 인영은 금세 사라지고 파도가 그 자리를 채웠다. 해넘이가 막 시작되어 벌써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시간에 그는 다시 돌아갔다. 바닷가에 오도카니 남아있는 또 다른 소년은 멋쩍은듯 한동안 그 잔상을 바라보았다.

"늦은건 이유가 다 있단 말이야, 에이스."

사보도 그 말을 남기고 바닷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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